차원이 다른 성장을 만들다
VJ

1995년, 단 6개의 제조 라인과 1,500여 명으로 시작된 VJ는 30년이 지난 지금, 56개 제조 라인과 4만여 명이 함께하는 창신 최대 생산 공장으로 거듭났다. VJ의 성장은 단순한 규모의 확장이 아니다. 생산력 향상을 위해 전 공정을 끊임없이 분석해 자동화가 가능한 부분을 찾아 기술과 아이디어를 더하고, 사소한 품질 이슈조차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세분화하여 촘촘한 트래킹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최고를 향한 책임을 다하며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해 온 VJ. 그 치열한 현장에서 그들이 말하는 ‘차원이 다른 성장’의 비결을 직접 들었다.
개발과 생산을 잇는 힘
제일 먼저, 가장 많이, 누구보다 깊이


CQM | 원선정 팀장
Q. CQM은 어떤 일을 하나
CQM(Category Quality Management)팀에서 6년째 생산 초기 모델들의 품질 안정화를 맡고 있다. 개발 단계에서 소량의 샘플을 만드는 것과 달리, 생산은 초 단위로 신발을 만들어야 한다. 날씨나 작업자의 숙련도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도 품질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생산 전, 전체 사이즈 테스트 단계에서 직접 공정을 점검한다. 수백 장의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 유관 부서와 실시간으로 공유 및 트래킹하며 잠재적 이슈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개발과 생산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이슈를 선제적으로 발견해, 어떤 문제도 생산까지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CQM의 핵심이다.

Q. 17년 만에 돌아온 VJ, 달라진 점이 있다면
베트남어 전공자로서 ‘꼭 베트남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2000년 VJ Lean팀에 배정받았다. 처음에는 현장에 가는 것조차 두렵고 모든 것이 힘들었는데, 17년 만에 다시 찾은 VJ는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푸근하고 편안했다.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며 쌓은 노하우 덕분에, 현장을 보는 시야와 일에 대한 자신감도 크게 달라졌다. 이제는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을 이끌며 변화를 만들기 위해 더욱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Q. 고객사 전략 변화에 따라 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최근 고객사의 전략이 신규 모델 개발보다 디자인 다양성 확대에 초점을 맞추면서, 모델의 작은 변경에도 철저히 대응하기 위해 CQM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모든 모델은 런칭 이후 컬러나 로고 디자인이 변경되곤 하는데, 변화의 폭이 작으면 공식 테스트인 ‘시화’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장 작업자들과 함께 변경된 공정을 테스트하고 완제품의 품질부터 잠재적 이슈까지 꼼꼼히 점검하며 기록하고 문서화한다. ‘제일 먼저, 가장 많이, 누구보다 깊이 파고든다’는 개발과 생산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내 신념이자, CQM팀이 지키는 원칙이다. 익숙한 공정이라고 안일하게 넘기지 않고, 작은 차이도 놓치지 않기 위해 주도적으로 확인하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추적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팀원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있게 대응하며 안정적인 생산을 이어가게 한다.

호치민 ABC 국제학교에서 성적 우수상을 수상한 원팀장의 아들(Jihoon)
Q. 주재원 생활의 원동력
주재원 생활을 굳건히 이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가족’ 이다. 한국 학교생활에 지쳐 있던 아들을 설득해 베트남으로 데려왔고, 낯선 환경과 언어, 수업의 어려움 속에서 함께 울며 버텨냈다. 하지만 아들은 점차 스스로 길을 찾아갔고 오는 9월, 오리건 대학에 입학해 비즈니스를 전공하며 꿈을 키워갈 예정이다. 그 여정은 단지 아들만의 성장이 아니었다. 그 모든 과정을 함께 겪으며 나 역시 단단해지고 깊어졌다. 힘든 순간마다 떠오르는 가족의 존재는 내가 이 삶을 계속 걸어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자 원동력이다.


40년 전통 Jordan,
볼보를 넘어 포르쉐를 만들다


PE | 최규범 님
Q. VJ 주재원으로 오게 된 계기
2017년, 입사 3년 차에 PE로 주재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해외 근무가 로테이션 추세였지만 아직 내 차례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히 기회가 주어졌고 ‘언젠가 해야 한다면 지금 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했다. 거의 백지상태였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모든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다. 8년간의 주재원 경험을 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기에, 그때의 선택이 지금 더 만족스럽다.

Q. VJ PE는 어떤 일을 하나
본사(HQ) PE가 모델 초기 샘플 개발과 품질 향상에 집중한다면, VJ의 PE는 전체 사이즈의 품질 관리와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을 위한 ‘개선’ 작업에 주력한다. 예를 들어 신발에 여러 겹의 레이어를 쌓을 땐, 부품의 정확한 위치를 잡아주는 ‘팔레트’라는 보조 도구가 필요하다. 샘플 단계에서는 전 사이즈에 적용될 기준 위치를 잡기 위해 고정된 핀을 사용하는데, 간격 조절이 불가능해 사이즈별로 따로 제작해야 한다. 하지만 VJ에서는 핀 간격 조절이 가능한 팔레트를 자체 개발했고 그 결과 제작 비용도 줄이고 생산 효율도 높일 수 있었다. 이처럼 생산 현장의 PE에게 중요한 역량 중 하나는 기존 방식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다. 고정관념을 의심하고, 익숙한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것. 이것이 바로 개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Q. 조던 신발은 품질 관리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고, 부담은 없나
VJ의 조던 생산이 처음 시작된, 2019년부터 지금까지 패턴을 맡고 있다. 조던은 이미 여러 공장에서 40여 년간 동일한 모델을 생산해왔기에 매우 엄격한 품질 기준을 가지고 있다. 첫 고객사 미팅에서 들었던 “지금까지 신발이 볼보였다면, 조던은 포르쉐다”라는 말이 너무 강렬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한 마디가 주는 긴장감과 책임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조던은 어퍼 가죽 두께가 0.1~2mm만 달라도 이슈가 될 정도로 ‘완벽함’을 기준으로 하기에,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더 높은 품질 일관성을 위해 다른 공장을 벤치마킹하고 정보를 추적하며 개선점을 찾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조던 오더가 꾸준히 이어지고 품질과 생산성 면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면 큰 보람을 느끼지만, 그만큼 책임과 부담도 크다. 지난 6년을 돌아보면 조던은 내게 ‘애증’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존재다.
Q. 기억에 남는 순간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멈춰 세웠던 그때, 한 달 가까이 공장에서 기계 한 대와 온종일 씨름했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조던은 디자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부품의 끝을 말아 접는 ‘폴딩’ 공정이 들어가는데, 당시엔 수작업으로 진행되다 보니 품질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폴딩 기계를 도입했고 핵심은 그 기계를 조던 맞춤형으로 정밀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기계가 눌리는 지점과 부품 위치를 정교하게 맞추기 위해 패턴을 수정하고 고정을 도와줄 보조 도구인 치공구를 직접 제작하며 테스트를 수십 번 반복했다. 코로나로 설비 전문가의 현장 방문이 어려웠던 시기라 메일과 전화로 소통하며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그렇게 조던 40년 역사상 최초로 폴딩 기계를 적용한 생산 라인이 만들어졌고 신생 공장이었던 VJ는 ‘조던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아쉽게도 비용 문제로 전면 상용화되진 않았지만, 지금도 스페셜 에디션과 일부 모델엔 이 때 만든 폴딩 기계가 활용되고 있다. 이 한 달의 시간. 자동화를 위한 치열한 고민과 몰입이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밀도 높은 순간이었다.

조던 역사상 첫 폴딩 기계

VJ 성장의 30년
함께 자랐다


QA | 오안(Dỗ Thị Hoàng Oanh) 매니저
Q. 어떤 업무를 담당하나
Quality팀에서 VJ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의 품질을 점검하고, 전반적인 불량률을 관리하고 있다. 불량률이 높은 라인이나 모델을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명확한 품질 기준을 세운 뒤 반복적인 작업자 교육을 통해 품질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고 있다.
Q. 30년 전 한국으로 6개월 연수를 왔다고
한국 회사에서 일한다는 호기심과 글로벌 브랜드 신발을 만든다는 기대감으로 VJ에 입사했다. 당시 23살이었고, 입사 직후 6개월 동안 한국에서 연수를 받게 됐다. 청소부터 재봉, 본딩까지 모든 제조 공정을 직접 익혔다. 처음엔 모두가 너무 열심히 일해 따라가기 버거웠고, 솔직히 분위기가 무섭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 나이에 낯선 환경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업자 어머니들이 자식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고, 진심 어린 걱정과 배려 덕분에 한국 생활이 점점 익숙해졌다. 그 따듯한 마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연수 기간 중, 태어나 처음으로 눈을 봤던 순간도 기억에 선명하다. 베트남에선 볼 수 없었던 풍경이라 더 특별했고, 그만큼 모든 경험이 새로웠다.
Q. 품질관리 30년 차다.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신발 품질은 1~2mm의 미세한 오차로도 불량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작업자마다 품질 기준이 조금씩 달랐고, 그날의 감정이나 관습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델별로 명확한 품질 기준이 정립되어 있고, 그 기준에 따라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검사 방식과 기준은 훨씬 더 세분화되었지만 수백 명의 작업자가 다양한 모델을 다루는 만큼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모든 작업자가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품질 관리자로서 이 인식을 바꾸고 확립하는 일이 가장 어렵지만 동시에 가장 핵심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품질 기준을 항상 문서로 명확히 남기고,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신입부터 고연차까지 모든 작업자가 같은 눈높이를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꾸준한 교육만이 품질에 대한 공통의 기준과 마인드셋을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Q. 생산 30년,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부분
지역 경제에 기여했다는 점도 분명 자랑스럽다. 하지만 무엇보다 ‘직원들을 위한 진짜 복지’가 가장 깊이 와 닿는다. VJ에는 베트남 북부에서 내려와 자취하며 일하는 직원들이 많다. 잦은 홍수와 경제적 여건으로 집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랑의 집(Be Loved House)’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가족까지 배려한 제도라 생각한다. 또한 백내장 발병률이 높은 베트남 특성을 고려해 마련된 ‘백내장 무료 수술’도 이미 500명 이상이 혜택을 받았다. 다양한 복지 제도들이 VJ 직원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지난 30년이 더욱 자랑스럽다. 내가 노력한 만큼 회사가 성장하고, 회사가 다시 직원을 위하는 이 ‘선순환’이 지금의 나를 더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만드는 것 같다.



MX Designer
MX Designer들의 전문성을 공유하고, 부서 및 팀 소개를 통해 일상 속 성장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나누고자 합니다.

